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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4학년도 학위수여식 설교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시 2015.02.17 조회수 5293
내용

2014학년도 학위수여식 설교

   

본문: 로마서 1:14-17

제목: 복음의 능력

   

우리는 오늘 감리교 신학대학교에서 지난 4년 또는 6년이나 7년 동안의 학업을 마치고 학사, 석사, 그리고 박사 학위와 수료증을 받게 된 분들을 축하하며, 이들을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과 후원해 주신 가족과 성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고자 여기에 모였습니다. 2015년은 우리 민족이 분단된 지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분단 체제라는 괴물과 같은 악의 세력이 아직 한반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분단 체제에 의해 포로가 되어왔던 우리 민족의 70년 바벨론 포로기를 종식시키고 평화통일의 새 시대를 열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오직 복음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에 의지하여 복음의 능력으로만 죄악에 사로잡힌 백성을 해방할 수 있다는 말씀으로 이제 교문을 나서서 주님이 부르시고 보내시는 세상으로 향하는 여러분을 격려하시고 파송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대언하고자 합니다.

   

1. 로마서 본문은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자신을 소개하고 자신의 포부와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불과 네 절에 지나지 않지만 그 안에 복음이라는 단어가 무려 네 번이나 반복되어 나옵니다. 실제로 로마서 11절에서 17절 사이에 복음이라는 말이 7번이나 나오는데 이로써 이 부분이 성경 전체에서 복음을 가장 많이 강조하는 부분이라고 단연코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어로 복음은 유앙겔리온’(euangelion)인데, ‘기쁜 소식’(Good News)을 뜻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는 쓰나미와 같이 덮쳐오는 온갖 소식들이 각종 매스미디어와 소셜미디어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식들은 유감스럽게도 기쁜 소식과는 거리가 먼 나쁜 소식디스앙겔리온’(disangelion)입니다.

   

그렇다면 디스앙겔리온, 나쁜 소식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무엇이 진정한 유앙겔리온, 복음인 것입니까? 이 시대의 많은 설교와 신학 가운데는 복음을 빙자한 비복음이 또한 이단의 세력 못지않게 교회의 전도와 선교를 욕되게 하고 있습니다. 복음과 비복음의 근본적인 차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 본문 117절에 의하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는 것은 다른 말로 계시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어로 아포카룹테타이는 감추어지고 숨겨진 것 드러나고 폭로된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17절에 이어서 18절에도 이 동사가 사용되는데,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난다고 할 때입니다.

   

따라서 복음과 하나님의 진노, 그리고 하나님의 의와 인간의 불의가 극명한 대조를 이루면서도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복음이나, 인간의 불의를 드러내는 하나님의 진노는 다 같이 하나님의 계시의 영역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참 복음은 오직 하나님이 계시하실 때만 우리에게 주어지며, 동시에 참 복음은 언제나 하나님의 의와 인간의 불의를 동시에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때, 곧 하나님이 계시하시지 않았는데도 그것을 빙자할 때나, 또는 인간의 불의에 대한 고발이나 하나님의 의에 대한 선포 없이 시류를 좇아서 복음을 값싼 것으로 만들 때, 복음이 아니라 비복음이 판을 치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는 말씀은 복음, 하나님이 보내시는 기쁜 소식’(1:1) 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시되는 기쁜 소식’(1:9)이 하나의 영적 여정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말로는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고 되어 있으며, 그리스어를 제가 번역한 바로는 하나님의 미쁘심으로부터 인간의 믿음에 이르게 한다”(엑 피스테오스 에이스 피스티스)입니다. 왜 이러한 번역이 가능하냐하면 첫째, 이 구절 바로 앞에 나오는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과 맺은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성을 뜻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이 구절 바로 다음에 나오는 구절은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하나님의) ‘신실하심’(피스티스)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로 이해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부터 인간의 믿음에 이르게 하는 복되고 기쁜 여정입니다. 3:22는 이 여정을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하나님의 의가 드러나는, 계시되는 과정으로 표현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로마서 전체의 주제입니다.

2.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담대하게 그리고 간절하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라.”(1:16) 여러분 사도 바울은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이 풍미하고 있고 이른바 팍스 로마나의 막강한 정치권력이 통치하고 있는 당대 제국의 수도로 나아감에 있어서 전혀 두려움이나 수치심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여러분은 혹여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아닙니까? 현대 과학사상과 세속주의 그리고 무신론이 팽배한 오늘의 한국의 지성계와 문화의 세력에 잔뜩 위축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고 있고 때로는 문화충돌과 종교간의 전쟁으로 회의주의와 가치 상대주의가 점점 증가하는 시대에 복음 전하기를 꺼려하면서 온갖 그럴싸할 핑계를 고안하는 것으로 학문한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복음, 기쁜 소식은 유일무이한 한 고유명사, 아니 한 인격입니다. 복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러분, 과연 우리는 우리의 삶과 이 세상에서 어디에 가든지 언제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하지 않습니까? 오늘 학위를 수여받는 분들만이 아니라 감리교 신학대학교를 구성하고 있는 학생, 교수, 직원과 동문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히 묻습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은 이 세상에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 거짓 기독교를 버리고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지난 세기 위대한 신학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칼 바르트의 도전에 귀를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참 그리스도인이) 가장 세상을 괴롭히는 말은 서기 1-30년을 살고 죽은 한 사람의 이름이 세상의 모든 구원과 유일한 소망이 되는 새로운 사건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여기서 세상이 듣는 것이란 단지 한 허풍쟁이가 자신의 증언을 통해 비교적 인정받는 세상에 알려진 모든 종교의 대표자들, 성인들, 사제들과 예언자들과 다른 어떤 것을 이야기 한다는 것과, 심지어 이 모든 종교들 각 각은 물론이고 그 전부에 대해 감히 문제를 제기하고 파기해 버리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증언을 들을 때 세상이 감지하는 것은 한 광신자의 견해이다. 이 광신자는 명백히 자기가 돌아갈 다리를 파괴했고 자기 뒤에 있는 배를 불태웠으며 그리고는 어이없게도 세상도 자기와 똑같이 해야 한다고 요구한다.”(Barth, CD IV.3,2, 623)

사도 바울은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하지 않은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1:16) 되기 때문입니다. 과연 복음은 이 시대에도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까? 여러분은 복음의 능력을 분명히 알고 있을 뿐 아니라 확실히 믿고 있습니까? 복음이 가진 구원의 능력은 모든 믿는 자에게미칩니다. 다만 구원이 베풀어지는 순서는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입니다. 사도 바울은 당대의 대제국 로마의 수도로 향해 복음을 전하러 가면서(1:15)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대한 분명하고 확실한 관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관점 곧 세상 나라‘(civitas terrena)의 관점에서 보면 당대의 세상은 헬라인과 야만인, 또는 지혜 있는 자와 어리석은 자로 분류되었습니다.(1:14) 사도 바울이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고 하신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세상 나라의 관점으로는 지혜 있는 헬라인이 역사의 중심이고 어리석은 야만인은 그 주변에 불과합니다. 중심의 제국에서 보면 유대인들도 주변이며, 유대인으로부터 구원이 시작된다는 것은 역사의 주변에서부터 시작되는 하나님의 선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철두철미하게 하나님 나라’(civitas Dei)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오직 그러할 때에만 분단시대를 넘어 선진통일의 시대를 열 수 있는 새 시대의 예언자와 전도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대 제국의 관점, 세상 나라의 관점에서 우리 자신을 바라보면 참 보잘 것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현존하는 최고의 강대국 미국이나, 떠오르는 신흥 강대국인 중국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이 역사의 한 주변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은, 복음의 능력은 그렇게 역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을 가져오는 복음의 능력은 오직 하나님의 의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3. 오늘 우리 시대의 교회와 신학의 위기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의를 인간의 의 곧 자기 의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골육의 친척인 유대인들을 위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 지라도”(9:3) 소원했던 것은 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기 위해서 자신들의 죄를 바르게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증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10:2-3)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그의 저서 <의로운 정신: 왜 좋은 사람들이 정치와 종교로 분열하는가?>에서 극도로 양극화된 오늘의 미국의 정치 문화와 풍토를 질타하였습니다. 그것은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이 자신의 주의와 주장의 의로움을 극단적으로 주장하며 상대방을 불의의 세력으로 악마화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미국 사회만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도 이러한 진영 논리에 의한 반목과 갈등이 교회는 물론이고 학교와 심지어 가족 사이에도 심각하게 우려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반목과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의로움의 기준과 관점이 제 각기 다르기 때문에 자기가 주장하는 것만 옳다고 하는 자기 의 때문입니다. 자신의 도덕적 기준이나 관점과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도의 경청과 배려마저 사라졌습니다. 무턱대고 자기의 도덕적 가치만을 내세우며 자기와 같은 진영이면 비록 문제가 있더라고 일단은 감싸주려고 안간 힘을 쓰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저는 어느 진영에 속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진보일 수도

보수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여러분이 진보든 보수든 인간의 도덕적 의의 추구에 의해서 구원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구원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동일하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에 달려 있습니다.(3:22) 여러분은 어느 진영에 속해 있던지 간에 그 진영의 논리에 지배되지 말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십시오.

   

그것은 때로는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 여러분이 속한 진영과 다투고 대립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시대에 여러분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곧 복음의 능력을 얻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도,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야만인을 막론하고, 그 사람의 종파나 인종이나 성별이나 계층이나 모든 차이와 차별을 뛰어 넘어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인간의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음을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하시라도 여러분은 착각하지 마십시오. 복음의 능력은 결코 인간의 의, 제아무리 잘 포장된 도덕적 의라 할지라도 여전히 인간의 자기 의에 불과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오늘 영광스러운 학위 수여와 소정의 과정을 마치고 수료증을 받는 여러분들 앞날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원합니다.(1:7) 여러분은 이제부터 은혜와 전도자의 직분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 중에서 신실하신 하나님께 복종하게 하는사명을 받았습니다.(1:5)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만을 믿고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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