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포도나무와 가지"-2025학년도 봄 학기 종강예배
- 작성자
- 부속실
- 등록일
- 2025-06-16 15:52:49
- 조회수
- 1195
- 첨부파일
“포도나무와 가지”
2025.06.05.
2025학년도 봄 학기 종강예배
말씀: 요한복음 15:5
설교자: 유경동 총장
주님의 평안과 은혜가 여러분 가운데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저희는 지금 2025년을 살고 있습니다. 보통 역사를 해석할 때 두 가지의 접근방식을 사용합니다. 하나는 ‘통시적 접근(Diachronic Perspective)’이고 다른 하나는 ‘공시적 접근(Synchronic Perspective)’입니다. 통시적 접근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역사를 연구하는 방법으로 특정 사건이나 현상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했는지를 살펴보는 겁니다.
올해는 아펜젤러 한국선교 140주년, 웨슬리 회심 287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통시적 접근은 각각 140년 전, 287년 전에 그 사건이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말해줍니다. 반면 공시적 접근은 단순히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가 아닌 당대의 문화, 구조, 관계 등을 이해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통시성과 공시성은 항상 함께 연결이 돼야합니다. 종강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신대 138년의 역사 속에서 수백 번의 종강예배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를 시간의 흐름에 따른 개개의 사건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 사건들이 어떤 구조와 관계 속에서 오늘날의 변화를 이끌어왔는지를 본다면 통시성과 공시성은 연결됩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다음의 말씀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요15:5) 이 구절은 통시성과 공시성의 관점들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가지라고 하는 이 말씀은 공시적인 사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말씀을 통시적으로 본다면 지난 2천년 동안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신 사람들과 그 공동체에 커다란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말씀을 이해할 때 중요한 것은 헬라어나 히브리어, 주석을 통한 문자적·역사적 이해뿐만이 아닌 그 말씀이 인간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창조 역사와 오늘의 우리에게 역사하는 살아있는 은혜에 대한 이해입니다. 이것은 통시성과 공시성을 포괄한 사건으로 감신대에서 미래 목회자를 준비하고 있는 여러분에게 역사하는 은혜의 순간이며, 하나님의 임재의 순간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포도나무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보통 포도나무에는 한 나무에 50송이의 포도가 열립니다. 그런데 올해 기네스북에 등재된 한국의 포도나무에는 4500송이가 열렸습니다. 2005년에 심은 포도나무는 가지를 뻗치고 뻗쳐 운동장 4분의 1크기가 됐습니다. 포도나무도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있는 우리의 삶에도 성령의 열매가 맺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포도나무, 우리는 가지입니다.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우리는 포도나무에 붙어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미래 한국 감리교를 이끌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께 붙들린바 돼야 합니다. 열매는 그렇게 맺게 되는 겁니다. 주님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그 마음을 품을 때에 우리의 말과 생각과 행동과 영이 변화되어 교회와 가정 나아가 민족과 세계가 많은 열매를 맺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다고 했을 때 기억해야 할 세 가지를 말씀을 통해 강조하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는 ‘말씀’을 품어야합니다. 시편 22편 말씀에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고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 그 자체이시지만 그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도 말씀의 대부분을 구약을 인용하며 제자들을 영적으로 먹이셨습니다.
또한 히브리서 4장 12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 가장 우선해야하는 것은 ‘말씀을 품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사랑의 근원이며 영적인 에너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활력이 있기에 우리가 지치거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말씀을 붙든다면 마르지 않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말씀을 의지하고 붙들어야 합니다.
한 예화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 라인홀드 니버에 대해 심도 있게 연구했습니다. 지도교수님과 니버의 성령론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제가 니버가 언급한 내용을 설명하자 지도교수님은 어느 대목에서 니버가 그렇게 설명했는지를 찾아오라고 하셨습니다. 니버에 대한 자료만 수백 권에 달하는데 어느 책의 대목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일단 제 연구실에 비치되어 있는 수백 권에 달하는 자료 앞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무작위로 책을 한 권 꺼냈습니다. 그리고 손이 잡히는 부분을 폈습니다. 그러자 바로 그 대목, 그 문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게 확률적으로 어떻게 가능할까요.
저는 회개했습니다. 제가 한 행동이라고는 앉아서, 고르고, 책을 폈던 세 가지 행동뿐이었습니다. 저는 신학이라는 학문은 나의 노력으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가르침이 반드시 필요한 학문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가르쳐주고 계셨습니다. 우리 지식의 주인도 하나님이시며 모든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다시금 기억하게 됐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그 말씀을 붙들고 진정한 에너지를 힘입어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두 번째로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18절을 보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품게 되면 호흡하는 것과 같이 하게 되는 것이 ‘기도’입니다. 이것은 결코 뻔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진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 우리 삶에는 어마어마한 성령의 열매가 맺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힘써 해야 할 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마지막으로 요한복음 13장 1절의 말씀을 보면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열매는 바로 ‘사랑’입니다.
여러분 요한 웨슬리 목사님이 1738년 1월에 2년간 선교 사역을 마치고 미국에서 영국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런데 돌아오셔서 “나는 죽음의 절박한 위험에 처해 있었으며 그로 인해 불안에 싸여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년간의 선교 사역의 끝에 마주하게 된 것이 불안이었다니 이해가가지 않았습니다.
그 웨슬리 목사님에게 1738년 5월 24일 회심이 일어났습니다. 그렇지만 웨슬리 목사님의 회심은 그 해 초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때 웨슬리 목사님은 “나는 여전히 이 믿음을 올바른 대상에 고정하지 않았다. 내게 믿음이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지, 그리스도 안에서, 또는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을 의미하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즉 웨슬리 목사님은 우리가 삼위일체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구원에 대한 나의 희망을 부분적으로든, 전체적으로든 나 자신의 행위나 의에 의존했는데 이것을 완전히 버린다.”고 고백합니다.
제가 앞서 말씀드린 학문에 대한 고백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지식 또한 나의 행위나 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지식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그렇기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를 위해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를 온전히 의지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바로 나의 유일한 칭의요, 성화요, 구속으로서 신뢰하겠다.” 바로 이것이 웨슬리 목사님의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고백입니다.
또한 웨슬리 목사님은 회심 당일, 새벽에 기도하시던 중 베드로후서 1장 4절의 말씀을 받습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웨슬리 목사님에게 회심이란 단순히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이 아닌 하나님이라는 포도나무의 가지가 되어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열매를 맺게 되었던 일입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회심 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악의적으로 나를 이용했거나 핍박한 사람들을 위하여 온 힘을 다해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그런 후 생전 처음 내 마음속에 느낀 것을 그곳에 있던 모든 이들에게 공개적으로 간증했다.” 이 말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바로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자신 안에 들어옴으로써 자신의 의를 위해서가 아닌 예수님의 마음을 들도 세상에 나아가서 모든 이들을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웨슬리 목사님의 회심으로 인한 간증이자 가장 큰 변화였습니다. 그 사랑으로 인하여 자신을 악의적으로 이용하고, 핍박한 사람들을 향해 했던 기도를 시작으로 감리교회 운동이 시작됐습니다. 우리는 그런 목사님의 자랑스런 후예들입니다. 이 역사적 의미는 지금 여러분을 통해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께 붙들려 영적인 말씀과 기도와 사랑으로 민족과 세계를 변화 시키고, 나아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담당부서 :
- 부속실
- 전화번호 :
- 02-361-9200